1. 책을 접하게 된 계기
최근에 '행복이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계속 고민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 이 책에서 어느정도 해답을 얻을 수 있지 않을 까 싶어 바로 구매했다.
그 동안, 행복이란 안정감에서 온다고 생각했다.
안정감은 어디에서 오는 것 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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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가 다 채워져야 안정감을 얻을 수 있는 것인가.
인간은 이 5단계 욕구를 채우기 위해 살아가는 것인가.
하나라도 구멍이 나면 인간은 계속해서 욕구를 좇아 부단히 노력하며 살아야 하는 가.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안정감에는 조건이 따라붙는다.
인생에서 욕구 충족을 위한 조건은 변하기 마련이다.
풍족하진 않아도 식욕을 채우기 걱정없는 삶이었는데, 경제적인 문제 또는 건강상의 문제로 마음껏 먹지 못할 수 있다.
매일 사랑 받는 삶을 살다가 어느 순간 사랑 받지 못할 수 있다.
명예롭고 존경받는 삶을 살다가 나락을 갈 수도 있다.
그럼 나는 불행해지는 것인가?
행복이란 조건이 변하더라도 행복해야하지 않을 까?
세상이 변하더라도 변하지 않는 가치는 어디에 있을 까 고민해보았다.
자신을 아끼고 믿어주는 것, 스스로를 사랑하는 마음에 가치를 두는게 어떨까.
개인적으로 매슬로우의 5단계 욕구 중 가장 상위 단계인 자아실현보다도 내 스스로를 사랑하는 마음을 지니는 것이 더 어려운 것 같다.
때때로 실패를 맛 보았을 때, 나는 왜 이리 못 났을 까 좌절하게 된다.
욕구와 이성사이의 균형을 조절하지 못했을 때, 난 왜 이리 현명하지 못할까 자책하게 된다.
이런 생각이 들더라도 '생각의 늪'에서 벗어나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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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은 하나 뿐이지만, 내 인생의 기회는 무수히 많잖아?
괜찮아. 지치면 한 템포 쉬어가면 되는 거야.
일단 내 방향성만 잃지 않으면 돼. 꾸준히 잘하고 있어(토닥토닥)
2. 책 리뷰
1) 죽음
쇼펜하우어가 말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내일이 오지 않길 원했다.'
태어나는 것은 내 의지가 아니었지만, 죽음은 내 의지로 선택할 수 있다.
자발적 죽음은 역설적으로 삶에 대한 강한 집착과 열망을 보여주는 행동이다.
죽도록 잘 살고 싶어서 죽음을 선택한다.
가령, 현실이 너무 냉혹하고 비참하고 버거워서 죽음을 떠올려봤다고 생각해보자.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편안해지고 싶은 마음에 죽음을 떠올린다.
이 마음은 나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출발한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삶을 포기하는 인지오류이다.
죽음은 고통을 해결하는 수단이 아니다.
쇼펜하우어가 개인의 죽음을 무지개에 비유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무지개를 구성한 하나의 물방울이 사라져도 무지개가 변하지 않듯
세상은 나의 죽음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다.
내 세상에서 우주는 나 자체라서 마음 속에서 널 뛰는 감정은 마치 자연재해같은데, 우주에 비해 나는 너무나도 먼지같은 존재다. 나 하나 없어진다고 세상에 아무런 영향이 없다니 분하고 허무하기도 하다.
인생은 허무하다. 그렇지만 허무하기때문에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모든 실수는 결과적으로 의미 없는 일이 된다.
한번 뿐인 인생 행복하게 살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인간은 과거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안은 채 현실에서 고통받곤 한다.
나는, 우리는, 지금 행복해야한다.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언젠간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평생 채워지지 않는 욕망은 영생의 욕망이 아닐까?
죽음은 노력으로도 어찌할 수 없기에 죽음 앞에 무력해진다.
이 무력감을 중화하기 위해 인간은 죽음 이후의 삶, 사후 세계를 믿기도 한다.
나는 종교가 없기 때문에 낙관적 허무주의에 기대어본다.
2) 쾌락과 행복
쇼펜하우어의 어록을 보고 최근에 본 영화 '인사이드 아웃2'가 떠올랐다.
인간이 모든 고뇌와 고통을 지옥으로 보내 버린 천국에는 무료함밖에 남아 있지 않다.
고통으로부터 벗어나지 않아도 된다.
고통을 수용할 줄 알아야 진정한 행복이 온다.
잊고 싶은 기억을 받아들였을 때, 비로소 온전한 '자아'가 된다.
새로운 것을 찾는 것,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 새로운 사랑을 원하는 것은 행복의 길이 아니다.
새로움은 쾌락이다. 새로움도 결국엔 낡는다. 그러니 원래 갖고 있던 것의 가치를 되새겨 봐야한다.
쾌락을 추구하는 것은 마치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행위와 같다.
계속해서 채워줘야 한다. 쾌락의 끝은 없다.
쾌락에 중독되면 매슬로우의 5단계 욕구인 생리적 욕구와 자아 실현의 욕구 사이의 균형을 맞추기 어려워진다.
쾌락에 의존하는 행복은 오래가지 않는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쾌락보단 고통의 원인을 없애야 한다.
인간은 행복의 감사함보다 고통의 불편함을 더 크게 느낀다.
인상깊게 읽었던, '김홍신 작가의 겪어보면 안다.'가 이 주제를 관통하고 있다.
겪어보면 안다.
작가 김 홍 신
굶어보면 안다
밥이 하늘 인걸
목마름에 지쳐보면 안다
물이 생명인걸
일이 없어 놀아보면 안다
일터가 낙원인걸
아파보면 안다
건강이 엄청큰 재산인 걸
잃은 뒤에 안다
그것이 참 소중한 걸
이별하면 안다
그이가 천사인 걸
지나보면 안다
고통이 추억인 걸
불행해지면 안다
아주 작은게 행복인 걸
죽음이 닥치면 안다
내가 세상에 주인 인 걸
있을 때에 행복함, 감사함을 알기보다 잃은 뒤에 소중함을 알게된다.
요즘 여러모로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매 순간 다 느끼고있고 다 알고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이제야 알겠다. 내가 가진게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3) 성격
내 인생 통틀어 제일 싫어하는 말이 있다.
'난 원래 이런 사람이야.'
사실 17살까지만 해도 내가 자주 하던 말이다.
그런데 어느 날, 안 좋은 성격이란 걸 알면서도 평생 고치려하지 않는다면 남은 삶이 아깝지 않냐는 이야기를 듣고 머리에 망치를 맞은 듯 띵했다. 그 당시 깨달음을 얻어 안좋은 습관이라 생각하는 것을 고쳤다.
성격은 선천적으로 타고나기도 하지만 후천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
오랜 시행착오와 자아성찰이 동반되어야한다.
하던 대로 하고 살던 대로 살면 갈등과 고민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스스로 성찰하고 부족한 점을 고치도록 해야한다.
이 과정도 결국 행복해지기 위함이다.
시행착오를 겪다보면 자신의 개성과 능력을 알게 될 것이다.
나에게 맞는 즐거운 일이 무엇인지 찾아 올바른 선택을 하고 목표와 무관한 모든 욕심을 버려야한다.
모든 욕심을 채우려하다보면 모든 걸 잃게 된다.
선택과 집중을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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