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삶의 가치
얼마 전, 발목을 다쳐 난생 처음 MRI를 찍게 되었다.
발목 MRI지만 30분동안 온몸을 꼼짝않고 가만히 누워있어야 했다.
없던 폐쇄공포증도 생길만큼 쿵쿵거리는 소음은 꽤 공포스러웠다.
'이 소리는 EDM이다.' 최면을 걸면서 내적 리듬을 타다가 금세 지루해졌다.
그 뒤로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여 명상을 할 수 있었다.
만약, 누군가가 "천만원을 줄테니 너의 남은 생을 가져가겠다" 하면 교환할 수 있을 까?
상상 속 경매장에 내 여생을 내놓아봤다.
천만원, 1억, 5억, 10억 그리고 100억까지 금액이 올라갔다.
천만원은 터무니 없다고 생각했고 100억은 좀 고민이 됐지만 액수가 중요한게 아니었다.
왜냐하면, 얼마를 주든 내 손에 쥐어지는 건 한 푼도 없으니까. 죽으면 끝이니까.
인생에 행복과 슬픔이 공존하겠지만, 어찌됐든 살아있다는게 중요하단 거다.
누구나 살면서 고달픈 날, 죽음을 떠올려본 적이 있을 것이다.
파도에 바닷물 한 방울 빠진다고 파도가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사람 하나 사라진다고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몸이 편안해지는가? 편안함도 신체가 있어야 느끼는 거지. 그저 소멸할 뿐이다.
억만금을 줘도 교환할 수 없는 내 삶이 소중하다고 느낄 때쯤 MRI 촬영이 끝이 났다.
삶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고 미래가 기대되지 않아 무너져 내린 적이 있지만
현재가 행복하지 않다고 내 삶의 가치가 없어지는 건 아니다.
2. 평정심
![](https://blog.kakaocdn.net/dn/bjXzk3/btsH7CKsF6B/qjdTT4cEkjMLfPBJek38kk/img.jpg)
작년 10월 부산에 사는 친구 결혼식에 갔다가 올라오는 길에 구미에 들렀다.
금오산 저수지에 들러 경치를 구경했다.
시야를 가득 채우는 저수지와 올레길의 풍경이 꽤나 아름다웠다.
저수지의 고요함을 보며, 내 마음도 저수지처럼 잔잔했으면 하는 생각에 부러움을 느꼈다.
내 마음은 마치 양동이에 담긴 물처럼 작은 파동에도 요동치는데 말이다.
저수지에 작은 돌 하나를 던져보아도 파동은 멀리가지 않았다.
나는 언제쯤 평정심을 가질 수 있을 까?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에 있는 마음의 평정을 찾는 네 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첫째, 불필요한 인간관계를 정리하라.
쇼펜하우어는 불필요한 교제에서 마음이 상하는 일이 생길 수 있으니, 무료함을 야기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관계를 단순화하고 생활 방식을 극히 단조롭게 해야 행복해진다고 했다.
최근 한달 동안, 그 동안의 삶과는 달리 많은 사람을 만났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소위 말하는 인싸인 척, 성격 좋은 척, 구김 없는 척 했다.
나의 그늘을 감추고 잘 살고 있는 척하는 것이 오히려 나를 더 불행하게 만들었다.
척을 여러번 하다보면 나 자신도 착각을 하게 되고, 착각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공허함이 몰려온다.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사람을 만나고 말을 아끼고 나의 하루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둘째, 질투를 경계하라.
쇼펜하우어가 힘들 때 친구 앙티메가 쇼펜하우어를 위로하면서 했던 말이다.
"그래도 너보다 더 불행한 사람이 있다는 걸 생각하며 불행을 참고 견디길 바란다."
솔직히, 이 부분은 전혀 공감이 가질 않았다.
나는 타인의 불행을 먹고 배불러지고 싶지 않다.
나의 불행은 나의 것이고 타인의 불행은 타인의 것이다.
그러기에 나보다 더 불행한 사람이 있다해도 나의 불행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질투는 나와 타인의 처지를 비교했을 때 생기는 감정이다.
질투를 경계하라는 것은 타인과 비교하지 말라는 말과 같다.
그러면서 왜 나보다 더 불행한 사람이 있다는 걸 생각하라는 것 일까?
쇼펜하우어가 한 말이 아니라 친구 앙티메가 한 말이라서 그렇다치고 넘어가야겠다.
셋째, 큰 희망을 걸지 마라.
얼마 전에 최강야구 직관 경기 티켓팅을 위해 PC방에 간 적이 있다.
네이버 시계를 켜놓고 10시 땡!하자마자 들어갔는데 대기 8000번이었다.
1시간 동안, 자리가 나오는 게 있는지 희망 회로를 돌리며 무한 새로고침을 했지만 결국 티켓팅에 실패했다.
나중에 기사를 보니 당시 동시접속자가 45만명이었다고 한다.
전체 자리는 2만석이고 1명당 4표까지만 구매할 수 있으니 최소 대기번호 5000번 안에 들었어야했다.
티켓팅에 실패했다고 하루를 망쳤을 까? 아니다. 당시 내 하루는 괜찮았다.
실패를 했음에도 괜찮았던 이유는 나는 야구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친구의 부탁으로 티켓팅을 도와주러 간 거였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말이 있다.
뻔하디 뻔한 말이고 이미 충분히 귀에 딱지가 않도록 들었던 말이다.
그렇지만 현실 반영이 잘 안되는 것 중에 하나가 기대하지 않는 것이다.
열렬히 사랑하는 것에게 만큼은 기대를 걸게 된다.
그리고 상처받고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다'는 말을 다시금 새기게 된다.
열렬히 사랑하지만 내려놓는 법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야 평정심을 유지할테니.
넷째, 세상에는 거짓이 많다는 점을 알아라.
쇼펜하우어가 말했다.
"행복의 알맹이를 알기 위해서는 어떤 것에 즐거워하는지가 아니라 어떤 일에 고통을 느끼는지를 확인해 봐야한다."
주변을 둘러보면, 저마다의 고충이 있는데 인스타그램을 보면 모두가 행복하기만 한 것 같다.
사실 당장에 나도 인스타에 행복한 순간만 박제한다. 굳이 우울한 모습을 전시하고 싶지는 않다.
행복했던 순간이 거짓인 것만은 아니었지만, 내 모습의 반만 보여줬으니 숨기는 것 또한 거짓일 수도 있겠다.
쇼펜하우어가 말한 행복의 알맹이는 '인간의 알맹이'로 대체해도 뜻이 통한다.
친하긴 친해도 왠지 거리감이 느껴지던 사람과 슬픔을 공유하고 나면 한층 더 가까워진다.
슬픔의 당사자만이 진정으로 슬픔을 느낄 수 있다 생각하기에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말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그치만 서로의 아픔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나면 인간의 알맹이를 알게된다.
손깍지를 낀 듯,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3. 마무리
이 책을 읽으면서 일찍 읽었으면 더 나은 삶을 살고 있지 않을 까 후회를 하기도 했다.
앞으로 후회없는 삶을 살기 위해 독서를 꾸준히 해야겠다.
이 책을 60% 쯤 읽으면 사랑에 관한 주제가 나온다.
오늘 이 주제는 꼭 읽고 자야겠다 했는데 벌써 새벽 한시다. 이만 자야겠다.
오늘은 '9와 숫자들 - 평정심' 노래 가사로 마무리 해본다.
평정심
찾아 헤맨 그이는 오늘도 못 봤어
뒤섞인 감정의 정처를 나는 알지 못해
비틀비틀 비틀비틀 비틀거리네
울먹울먹 울먹이는 달그림자 속에서
역시 내게 너만 한 친구는 없었구나
또다시 난 슬픔의 품을 그렸어
내일은 더 나을 거란 너의 위로에
대답할 새 없이 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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