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력을 보면서 새삼 놀랐다. 새해를 맞이한 지 며칠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1월이 다 지나가고 있다. 취업한 뒤로 시간이 참 빠르게 흘렀다. 정신없이 바쁜 하루하루가 쌓여 한 달이 금방 지나갔다.
그런데 문득, 지금 회사에 들어온 지 얼마나 됐는지 떠올려 보니 4개월 반 정도였다.
"4개월 반밖에 안 됐다고? 1년은 된 것 같은 기분인데, 왜 이렇게 시간이 느리게 갔지?"
같은 시간인데도 두 가지 상반된 느낌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체감 시간이 왜 다르게 느껴질까?
시간의 속도를 판단하는 기준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내 일상의 흐름을 기준으로 보면 시간이 빠르게 느껴진다. 반복되는 루틴 속에서는 하루하루가 비슷하게 흘러가고, 특별한 사건이 없으니 기억의 밀도가 낮아진다. 회상할 일상이 딱히 없으니 시간이 빨리 흘러갔다고 느끼게 된다.
또한, '몰입'도 시간을 빠르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다.
몰입은 뭘까. 나는 몰입이 지루함의 반대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심리학자 칙센트미하이는 몰입을 '도전과 능력이 균형을 이룰 때 발생하는 최적의 경험 상태'라고 설명했다. 반대로 흥미나 도전감이 없으면 지루함을 느낀다. 지루하면 체감 시간은 느리게 흘러간다. 취업 후 시간이 빠르게 느껴진 건 반복되는 루틴과 몰입, 이 두 가지 때문인 것 같다.
반면, 시간이 느리게 느껴지는 건 회고적 관점 때문인 것 같다. 입사 후 4개월 동안 새로운 환경, 업무, 사람들과 부딪히며 많은 경험을 쌓았다. 새로움은 기억의 밀도를 높이고, 시간이 길게 느껴지게 만든다. 낯선 장소를 찾아갈 때는 길이 멀게 느껴지지만, 돌아올 때는 짧게 느껴지는 경험과 비슷하다. 입사 후 적응하는 동안 경험한 많은 새로움이 시간이 느리게 느껴지게 만든 것 같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시간은 극도로 절대적이며 상대적인 독특한 개념이다.
하루 24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다. 전 세계가 UTC라는 동일한 시간 체계를 사용하고, UTC는 세슘 원자의 진동 주기로 정의된 1초를 기준으로 한다. 이렇게 보면 시간은 굉장히 객관적인 개념이다. 하지만 사람마다 시간을 체감하는 방식은 다르다. 시간은 단순한 물리적 수치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과 경험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는 상대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이다.
누구나 공평한 1분 1초를 살아가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체감 시간은 달라진다. 경험과 기억에 따라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늘릴 수도, 줄일 수도 있다. 내가 시간을 통제할 수는 없지만, 체감 시간은 나에게 달려 있다. 사람 일은 모르는 법이다. 당장에 오늘 죽을 수도 있다. 내 수명은 내 능력 밖의 일이다. 하지만 죽기 전까지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내 몫이다.
인간은 시간으로 삶을 구조화 한다. 과거를 회상하고 현재를 살아가고 미래를 계획한다.
반복되는 루틴 속에서도 취미나 여행 같은 새로움을 한 스푼 더하고, 기억의 밀도를 높이며 살아야겠다. 그리고 몰입하는 재미를 아는 그런 삶을 살고싶다. 다만, 몰입과 불안은 한 끗 차이기 때문에 과하지 않게 페이스를 조절해야 한다. 과한 도전감과 완벽주의는 긴장과 불안을 불러오고 이는 번아웃 증후군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페이스 조절에 미숙한 것이 내 단점이기도 하다.
아무튼 결국, 중요한 건 도전하되 마음을 잘 챙기는 것이다. 달력을 보며 체감시간의 역설을 떠올리다가 주절주절 생각을 정리해 봤다. 출근하려면 이제 자야겠다. 오늘의 일기 끝.